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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홍랑과 최경창의 지독한 사랑
- (전)광주교육연수원 총무부장 윤은상
작성 : 2020년 12월 09일(수) 11:33 가+가-

- (전)광주교육연수원 총무부장 윤은상

400년 전에 홍랑과 지극한 사랑을 한 최경창은 박순의 문인으로 선조1년(1568)에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573년 병마절도사의 보좌관인 북도평사에 부임하면서 홍랑과의 인연을 맺게 된다.

함경도 관기 홍랑은 평소 최경창의 시조를 즐겨 읊으며 최경창을 흠모해 왔다. 마침 함경도로 첫 부임한 고죽 최경창과 홍랑은 부임지 지방관이 베풀어준 연회에서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지지만 고죽 최경창이 이듬해 부임지를 떠나 한양으로 옮기면서 생이별을 한다.

홍랑은 최경창을 따라서 함경도 함흥 함관령까지 배웅하고 눈물로 이별하면서 시 ‘묏버들가’를 최경창에게 보내 자신의 연정을 전했던 것이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한양에 도착한 고죽 최경창은 시름시름 앓게 되고, 이 소식을 들은 홍랑은 이주 금지령을 어기고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으로 향한다.
고죽 최경창은 홍랑의 극진한 간호로 완쾌한다.

서울에서 최경창이 홍랑과 함께 있는 것은 당시에는 흠은 아니지만, 붕당이 심했던 당시에 명종비 인순왕후 국상 중에 기생과 어울렸다고 사헌부에서 탄핵받아 파직되고 북방지역 사람의 도성출입을 제한하는 법을 어긴 홍랑 또한 홍원으로 돌아가며, 두 사람은 기약 없는 두 번째의 이별을 한다. 그 이후 최경창은 복직하여 종성부사로 부임된 뒤 1년 만에 한양으로 돌아오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객사하였다.

멀리 함경도 땅에서 사랑하는 임과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홍랑에게 날아든 최경창의 갑작스런 사망소식은 그녀로 하여금 몸조차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안겨주었다. 홍랑은 파주에 있는 최경창 무덤 옆에 3년의 시묘살이를 하며 무덤을 지켰고, 자신의 얼굴을 훼손시켜 뭇 남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창의 주옥같은 문장을 모아 정리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전쟁이 끝나자 해주 최씨 문중에 최경창의 유작을 전달하고 한 많은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잔혹했던 전쟁 중에 오늘날 까지 고죽 최경창의 시와 문장이 전해지게 된 것은 지극한 사랑과 정성으로 그것을 지켜온 홍랑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 남자를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하였던 홍랑, 당대의 문장가 최경창과의 동거기간은 불과 6개월 남짓하였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계속되어 그 후손들도 파주시 교하면 다율리의 최경창과 임씨 부인의 합장묘 밑에 홍랑의 무덤을 만들어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시대 기생으로는 유일하게 사대부의 족보에 까지 올랐다.

홍랑과 최경창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영원한 세월만큼이나 신분과 시대적 질곡을 뛰어 넘어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우리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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