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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자신에게서 탈피
- 논설위원 문민용
작성 : 2021년 03월 24일(수) 11:12 가+가-

논설위원 문민용

독일의 문호 괴테의 작품 중에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는 말이 있다. 탈피한다는 말은 껍질을 벗는다는 말이다. 뱀은 정기적으로 자기 껍질을 벗어야만 하는데 한 번씩 껍질을 벗을 때마다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만일 독이 있는 어떤 음식을 잘못 먹거나 날카로운 쇠붙이에 찔려 피부에 상처를 입고 껍질을 벗지 못하게 되면 뱀은 자신의 껍질에 갇혀 죽음에 이르고 만다.
바닷가재도 마찬가지이다. 바닷가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속살을 보호해 주던 단단한 옛 껍질을 스스로 벗어 버리고 더 커다란 새 껍질을 뒤집어써야만 한다.

탈피는 지독하게도 성가신 과정이다. 껍질 안에 들어있는 바닷가재의 몸은 연하고 흐물흐물하다. 시간이 지나면 가재의 몸은 성장하지만, 껍질은 절대로 자라나지 않는다. 그러면 딱딱한 껍질이 바닷가재의 몸을 조여오기 때문에 고통스러워진다. 이럴 때마다 가재는 안전한 바위 밑으로 들어가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야 한다. 낡고 단단한 외피가 압력을 받아 쪼개지면, 바닷가재는 모로 누운 채 근육을 꼼지락거려 벌어진 각질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온다. 낡은 껍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외피가 생길 때까지, 바닷가재는 외부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벌거벗은 상태에서 괴로움과 고단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낡은 껍질을 벗어 버리고 한걸음 성큼 성장해간다. 이 과정을 ‘탈피’라고 부른다.

바닷가재는 5년간 25번의 이러한 탈피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성장하고 다 자란 후에도 1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는다. 만약 두껍고 단단한 껍질을 벗어내지 못하면 오염과 세균에 노출되어 죽고야 말기 때문에 반드시 탈피해야 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대게도 탈피를 통해 성장한다. 어린 대게는 제 몸이 껍질보다 커지면 그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 어린 대게가 완전히 성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열 번 이상 탈피를 해야 한다. 다른 동물들 역시 탈피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대게의 탈피는 죽음을 넘어서는 고통의 과정이다.

탈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감싸고 있는 껍질에서 몸을 빼내어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대게는 마디마디로 이어져 있으므로 그 끝마디에 들어있는 몸 즉 긴 다리를 상처 없이 빼내는 일은 죽음을 넘나드는 일이다. 그 마디들로부터 안전하게 제 몸을 빼내야 한다.

또한, 대게는 외골격 때문에 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눈과 입, 아가미, 더듬이까지 미세하게 움직이며 각각의 기능을 충분하게 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들 하나하나를 겉껍질로부터 분리해 내야 탈피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일은 대게에게 있어 너무나 힘든 일이어서 대부분 게의 폐사는 탈피 때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데 고난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 껍질을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해도 아직 새 껍질이 몸을 보호할 만큼 단단하지 않으니 그때를 틈타 덤벼드는 천적을 막아내고 피하는 것 또한 죽을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겪어낸 대게는 이전의 크기보다 두 배정도 커진다고 한다. 그리고는 다시 그 껍질이 작아지면 또 한 번의 탈피과정을 거쳐서 성장하고 그렇게 여러 과정을 지나 대게는 성체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사람이 뱀이나 게처럼 탈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도 각자 마음의 껍질, 습관의 껍질, 고정관념의 껍질, 옳음의 껍질들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갇혀 살고 있다. 뱀이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것들을 자주 벗어버려야 미래를 향하여 웅비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습관이나, 사상, 옳음에 갇혀 있다. 그런 사람을 탈피하지 못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이 품고 있었던 고정관념이나 자기주장, 부모의 테두리, 가치관에서 끊임없이 벗어날 수 있어야 새로워지게 되면서 소망을 갖게 되고 성숙하게 된다.
세상의 생명을 가진 많은 피조물 들의 탈피과정을 보면서 우리에게 부딪혀오는 원치 않고 계획치 않은 많은 부분의 탈피과정을 겸허히 받아들일 마음이 준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탈피과정을 거쳐 성장하는 인생이야말로 값지고 아름다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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